부여 송국리 집자리 ( 扶餘 松菊里 집자리 )
소재지 1) 충청남도 부여군 초촌면 송국리
시대 1) 청동기시대
유적분류 1) 유형문화재 > 유적 > 생활유적 > 주거유적:취락
* 본 자료는 문화유적분포지도 제작 당시의 설명으로써 현재와 상이할 수 있음을 양지하시기 바랍니다.
일반설명

석관묘와 先史時代 취락지, 분묘 등으로 이루어진 유적으로, 청동기사회 고찰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. <br> 주변환경은 낮은 구릉지대로 20∼ 30m 높이의 구릉이 전개되고 있는 평야지대에 속한다. <br> 1974년 석관묘가 조사된 이후 1975년 이래 1997년까지 11차례에 걸쳐 간헐적으로 조사되어 집자리 42기, 옹관묘 6기, 석관묘 3기, 토광묘 5기 를 비롯하여 목책시설(공주 092-3)도 확인하였다. <br> 石棺墓(공주 092-4) : 1974년 4월에 調査되었다. 장축방향은 정남에서 약 30°가량 서쪽으로 기울어져 있고 길이가 195cm, 너비는 북측이 84cm, 남측이 78cm, 높이는 81cm이다. 동·서의 긴 벽은 각 5매~4매, 남북의 짧은 벽은 각 1매~2매로 꾸몄다. 또 바닥에는 3매의 판석형 석재를 깔았으며 석관 내에는 작은 돌로 채워져 있었다고 한다. 출토유물은 비파형 동검, 돌화살촉, 관옥, 식옥이 있다. <br> 이후 공주박물 관에서 조사한 결과 이 석관묘 주변에서 여러 기의 작은 석관들이 있었 는데 부장품들과 구조가 빈약하여 비파형동검이 나온 이 석관묘가 이 지역의 중심을 이루었던 듯하다. <br> 집자리(공주 092-2) : 지표면에서 그 흔적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42기 의 집자리가 조사되었다. 평면형태에 따라 원형, 장방형, 부정형의 3가지 가 있다. 이 중 원형집자리가 이 지역의 주된 집자리인데 크기는 지름 3.4m에서 5.3m까지 크기가 다양하지만 대체로 지름 4.7m의 규모가 많다. 수혈 깊이 30∼150cm로서 경사지게 팠는데 출입구시설은 보이지 않으며 가옥내에 화덕이 발견되지 않는 점이 특징이다. 바닥 중간부분에 지름 1m 내외의 타원형 구덩이를 파고 그 양쪽 끝에 대칭되게 기둥구멍 1쌍 을 파서 중심기둥을 세우고 바닥 외곽에도 돌아가며 기둥을 꽃아 중심 기둥을 보조하였던 것 같다. 장방형 집자리는 깊이가 얕지만 원형집자리보다 규모가 큰 것이 많으며 수혈 혹은 지상가옥의 형태로 보고 있다. <br> 1987년에 조사된 54-14호 를 보면 길이 747cm, 너비 377cm에 깊이는 34∼45cm인데 집자리 안에 서 불에 탄 서까래가 남아 있었다. 마루도리의 흔적이 4∼5가닥씩 발견 되었는데 지붕구조는 우진각의 지붕형태를 지닌 것으로 보기도 한다. 토기는 무문토기, 紅陶가 중심을 이루고 있는데, 토기는 송국리유형으 로 분류될 만큼 특징을 지니고 있다. 石器로는 石刀, 磨製石劍, 대팻날, 石鑿, 敲石, 石斧, 석촉, 슷돌 등이 출토되고 있으며, 더불어 당시에 농경 의 흔적을 알리는 곡물류가 검출되기도 한다. 甕棺墓 : 모두 6基로 집자리지역에서 가까운 낮은 구릉에 위치하고 있다. 묘광을 옹관보다 약간 크게 수직벽으로 판 뒤 다시 묘광을 다시 파서 2단의 묘광을 만든 후 단옹 하나를 직접 매장한 다음 돌을 덮어 뚜껑으로 사용하였다. 옹관 바닥은 구멍을 뚫은 형태이다. <br> <國立公州博物館 1993, 『松菊里 Ⅴ』.<br> 國立中央博物館 1979, 『松菊里 Ⅰ』.<br> 國立中央博物館 1986, 『松菊里 Ⅱ』.<br> 國立中央博物館 1987, 『松菊里 Ⅲ』.<br> 國立中央博物館 1991, 『松菊里 Ⅳ』.<br> 百濟文化開發硏究院 1989, 『忠南地域의 文化遺蹟』第3輯 扶餘郡篇.<br> 扶餘郡誌編纂委員會 1987, 『扶餘郡誌』.<br> 忠淸南道 1996, 『文化財大觀』.><br>